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이후 침묵을 지켜왔던 홍명보 감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10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광주FC와의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 수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홍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직전 라운드(수원FC전)까지 울산을 떠나지 않겠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는데,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솔직히 말해 대표팀에 가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다들 아시다시피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당시 상황은 매우 힘들었다. 솔직하게 대표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대표팀에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가고 싶지 않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10년이 지났다. 울산에서 3년 반 동안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2월부터 내 이름이 언급되면서 정말 괴로웠다. 무언가 난도질 당하는 느낌이었고 어려운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홍 감독은 “이임생 기술이사를 만나고 나서 MIK(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협회의 기술 철학에 대해 들었다. 행정일을 하면서 마무리 짓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밤새도록 고민했지만, 솔직히 두려웠다.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이 매우 두려웠다.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이라는 마음으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홍명보 감독은 “실패했던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지만, 반대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승부욕도 생겼다. 팀을 새롭게 만들어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임생 이사와 만나 밤새도록 고민하고 고뇌했다. 저에게 그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10년 만에 간신히 조금 재미있는 축구도 하고 선수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결국 저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저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만 있다. 이것이 울산 팬들에게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입장을 바꾼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한 뒤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했다. 이후 정해성 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해 새 감독 선임을 주도했다. 국내외 100여 명의 후보군을 만들고 최근까지 10차례 회의를 통해 후보를 4명으로 압축했다.
그러나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감독을 데려오지 못하면서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황선홍 감독과 김도훈 감독이 임시로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 예선 두 경기씩을 지휘했다.
황선홍 감독과 김도훈 감독이 임시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는 ‘한국 축구를 위해서’였다. 대한축구협회가 신중하게 새 감독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임시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두 감독 모두 ‘한국 축구가 위기’라고 생각해 임시 감독직을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한마음축구대회’에 참석해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아직 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보고 받은 것이 없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들었다. 누구를 뽑더라도 여론은 45% 대 55%로 갈릴 것이다. 50%의 지지를 받으며 감독이 되는 경우는 없다.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와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던 박주호는 소식을 접한 뒤, “절차가 정확하지 않다. 절대 아니다. 내가 안에 있었지만 모르겠다. 설명할 수가 없다.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 (홍명보 감독이) 안 한다고 했다가 된 거고, 며칠 안에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왜 외국에 나가 감독 후보 4, 5명을 만난 건가? 이임생 총괄 이사는 왜 유럽에 간 것인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협회를 전면 비판했다.
이어 그는 “지난 5개월이 너무 안타깝고 아쉽고, 진짜 허무하다”며 “누가 됐든 절차에 맞게, 게임 플랜과 한국 축구에 맞는 사람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왜 홍명보 감독이 됐는지 정도는 알아야 되는 것 아닌가. 난 모르겠다. 이제까지 (전력강화위원으로) 5개월 일했는데 너무 허무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질문에 홍명보 감독은 “영상도 보고 내용도 확인했다. 개인적으로 박주호 위원이 자신이 가진 커넥션을 통해 전력강화위원회 활동을 매우 열심히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일들이 우리 축구계에서 더 많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존중받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어야 한다. 분명히 박주호 위원의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까지 포용하는 것이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된 홍명보 감독은 현재 대표팀 전력에 대해 “지금과 10년 전은 많이 다르다. 그때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경험도 많이 부족했다. 축구 지도자로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 지금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10년 전보다는 K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고 지도자로서 매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 한국 대표팀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팀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다. 팀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재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뛰어난 재능을 헌신과 희생 위에 올려놓는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반면 이기주의 위에 놓는다면 그 재능은 발휘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팀 스포츠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부분이다.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얼마나 신뢰 관계를 쌓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울산 팬들을 향해서는 “너무 죄송하다. 그동안 너무 좋았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이렇게 작별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내 실수로 인해 떠나게 되었다. 울산 팬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드릴 말씀이 없다. 2014년 월드컵 이후 협회에서 일을 마치고 울산을 선택했을 때 온전히 개인만을 위한 선택이었다. 울산에서 팬들과 축구만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얼마 전까지 응원의 구호가 오늘은 야유로 바뀌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시 한 번 울산 팬들과 처용전사 분들께 사과드린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