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처럼 또 한 번 감독 선임 프로세스를 무시한 한국축구협회. 수많은 외국인 감독을 뒤로 하고 5개월 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사실 홍명보 감독이 프로세스를 만든 당사자라 더 실망스러운 상황. 이 시점에서 한국 팬들이 유독 그리워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판곤 감독이다.
협회에서 홍명보 감독과 함께 프로세스를 만든 김판곤 감독. 하지만 지금은 협회가 아닌 말레이시아 대표팀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김판곤 감독은 2022년 1월 말레이시아 축구 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2년 이상 성공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지도 하에 말레이시아는 처음으로 성적을 통해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으며,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무승부를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또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을 부임 당시 155위에서 135위로 끌어올렸다. 비록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아쉽게 탈락했지만, 오만과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치열한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김 감독의 부임 이후 말레이시아 축구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김 감독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약 2주간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 기간 김 감독은 국내 매체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2년이 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부임 당시에는 현지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만족스러운 점도 있지만 아쉬움도 많다. 중요한 대회와 일정에서 선수 차출이 원활하지 않았고, 핵심 선수의 부상도 있었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더욱 아쉽다”고 회고했다.
말레이시아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국가 규모가 작고 인적 자원이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4강의 자리를 유지하며 도약하고 있다. 김 감독은 K리그와 홍콩 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했던 경험과 대한축구협회에서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축구를 발전시켰다.
김 감독은 “나도 동남아시아에 있지만 정말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지만 나와 우리 코치진의 시스템과 축구 철학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팀이 발전하고 있다. 그 점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김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상황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5개월이 넘도록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지 못하다가, 국내 지도자인 홍명보 감독을 임명했다. 이러한 졸속 행정 속에서 이제서야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김 감독이 협회 요직에 앉아 원활하게 운영되던 시절과는 180도 달라진 상황이다. 협회 조직 자체가 와해되며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 감독은 “내가 협회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한국 축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 과거 내가 제시했던 방향성이나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축구를 늘 응원하고 있다. 잘될 것이고, 잘돼야 한다”는 메시지도 남겼다.
김 감독은 K리그 경기도 늘 관찰하며, 언젠가는 돌아갈 무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K리그도 확실히 더 전략적이고 재미있어졌다”면서 “최근에는 특히 광주 경기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이정효 감독은 정말 능력 있는 지도자다. 올해 위기도 있지만, 분명 K리그에서 현대 축구에 가장 근접한 경기 모델을 구사한다고 본다. 내가 추구하는 축구와도 맞닿아 있다. 인터뷰에 관한 말도 많지만, 나는 그것도 마음에 든다.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나도 언젠가는 K리그로 돌아가 젊고 능력 있는 지도자들과 경쟁하며 싸우고 싶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국 클럽에서 내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